[미와카이] 두 걸음 뒤에 (4)
카이는 천천히 바지를 벗어 내렸다. 쉽게도 내던져지는 천 너머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맨몸이 있었다. 흰 살빛은 침침한 빛 아래에서도 망막 맨 안쪽까지 날카롭게 와 닿고, 축축하게 젖은 속옷을 손가락 끝으로 밀어 내릴 적에는 괜히 숨이 탁 막혔다. 속옷이 허벅지까지 쉽게 말려 내려가도록 붙잡고 살짝 허리를 흔드는 모습에는 별 자극 없이도 아랫도리가 다시금 딱딱하게 부풀었다. 그것을 본 카이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갑자기 얼굴에 열이 확 치솟았다. 굳이 따지자면 별 자극 없이도 앞섶이 축축해진 카이 쪽이 더 낯을 붉히는 것이 옳은데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구는 모습은 얄미운 구석까지 있었다. 동시에 조금은 가엾도록 애잔했다. 이만큼 담담하게 굴기까지 마음 앓는 일이 몇 날이나 있었을까. 속이 얼만큼 썩어 문드러져야 나에게 이만큼 폭력적으로 대할 수 있을까.
카이는 그런 상념에 쉬이 빠지도록 시간을 주지 않았다. 허벅지 위에 무릎을 내리고 앉자 곧바로 뜨거운 살덩이가 서로 맞닿았다. 미와는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미끈거리고 부대끼는 감각이 지독하도록 음란했다. 모든 촉각이 일시에 아래로 쏠리는데, 그 부분에 바로 카이와 맞닿아 있었다. 카이가 손을 느리게 펼쳐 팽팽하게 맞대어진 부분을 비비듯 쥐고 쓸었다. 자기도 모르게 카이 이름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오고, 그 자극에 놀란 것은 미와 뿐이 아닌 모양인지 카이도 몇 번인가 손을 꼼지락거리다가는 가는 한숨을 뱉으며 허리를 굽혔다.
미와의 몸에 등을 구부리고 기대서 손과 허리를 움직이는 모습은 우습게도 천진하게 보였다. 결코 몸에 익지 않은 움직임. 허리 한 번 흔들릴 적마다 확 이는 쾌감에 지레 제가 놀라 똑바로 앉지도 못하고 힘이 풀린 것이 분명했다. 소리를 내기는 곧 죽어도 싫은지, 입술을 콱 깨문 것이 보였다. 길다란 편인 손가락인데도, 성인 남성 두 명의 성기를 한번에 담아 쥐기에는 영 빠듯한지 자꾸만 손가락이 헛돌았다. 심지어 그조차도 곧 눈 앞이 하얗게 튀는 쾌락이 되었다. 아까 사정한 것이 겸연쩍게도 아랫춤이 홧홧했다.
열이 오른 얼굴로 살짝 찡그린 채 이를 악문 미와의 얼굴을 잠깐 보던 카이는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젖은 손을 들어 길게 몇 번인가 핥아 올렸다. 길죽하고 보기 좋은 손가락에 혀가 닿는 것이 보이자, 아까의 구음이 저절로 떠올라서 얼굴에 열기가 더해졌다. 카이는 그렇게 적신 손가락을 스스로 뒤로 가져갔다. 조금 찌푸리는 얼굴. 설마, 하는데 카이가 다시금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다른 쪽 손으로 최대한 손가락을 펴서 페니스를 함께 감아 쥐자, 맞닿는 면적이 넓어지면서 마찰이 심해졌다. 어느 쪽에서 흐르는지 모를 멀건 액체가 미끈거리고 질척한 소리를 내고, 뒤에 넣은 손가락이 조금은 편해졌는지 카이가 조금 허리를 뒤채며 손을 놀리는 것이 보였다. 머릿속이 끔찍하게 복잡스러웠다. 십여 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 온 친우가 평생 보인 적 없는 표정으로 자신 위에서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가장 싫은 것은 자신이었다. 단호한 말로 그만 두게 한 후 이야기를 하거나 몸부림을 치지도 않고, 그저 카이가 이끄는 대로 속수무책 휘둘리는 자신이 제일로 싫었다. 이런 무름이 싫었다. 이런 우유부단한 자신이 싫어서 걸음을 물리고 등을 돌린 결과가 이거였다. 결국 자신은 또 한번 카이가 손 휘젓는 대로 흔들린다고, 그대로 푹 꺾여 쓰러지고야 만다고 자조하듯 생각했다. 시신경이, 촉각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외설스러운 쾌락 앞에 무너지고, 마음은 마음대로 흔들거리고 밑둥부터 갉혀 나갔다.
카이는 더 이상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어둔 조명 아래서도 얼굴에 열이 발갛게 오른 것이 확실히 보였다. 울 것같이 찡그린 눈가는 견디기 힘든 쾌감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카이는 손을 물리고 허릿짓 또한 멈추었다. 여전히 맞닿은 채 피가 몰려 단단한 성기 끝을 톡 건드리곤 손을 떼고, 양 손을 뒤로 가져가 엉덩이를 살짝 잡아 벌렸다. 이 쪽에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아도, 그 음란한 광경에 솜털이 절로 쭈뼛 섰다. 미와는 이렇게 된 지금까지도 도통 믿기가 힘들었다. 카이 토시키. 내가 알던, 친하던 그 사람. 그리고 카이가 조금 더 찌푸린 얼굴로 몸을 내렸다. 채 전부 넣지도 못하고 허리를 내리면서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보이고, 미와는 자기도 모르게 생각했다.
사랑스러웠다. 싫어질 수도 있었다. 억지로 이렇게 사람을 묶어 놓고 마음대로 이런 짓을 한다는 것에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딱히 화가 나지도, 카이가 역겹도록 싫지도 않았다. 다만 조금은 가여웠고, 안쓰러웠으며 또 딱 그만큼 더 사랑스러웠다. 미와에게 닿는 것 만으로도 몸이 달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적시는 속옷. 맨 몸을 전부 보이는 것은 또 싫어서 굳이 벗지 않는 셔츠. 그렇게 믿기 힘들고 비현실적이다가도 이런 부분에서 또렷하게 느껴졌다. 카이로구나. 내가 알던 그 사람이구나. 네가 맞구나. 기묘한 안도감이 들고, 그런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쾌감이 치달았다. 아직도 끝까지 넣지 못한 채 찡그리고는 밭은 숨을 쉬는 카이가 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빤히 바라 본 모양이었다. 카이가 다시금 울 듯, 그도 아니면 아픈 듯 얼굴을 찌푸리고는 중얼거렸다.
“..보지 마.”
이러는 와중에도 곧 죽어도 이는 세우고 으르렁거리기는 하는 것이 참 익숙했다. 얼굴 보고 싶어. 작게 말한 것이 들렸지 아닌지, 카이는 소매 자락으로 입가를 가리고는 눈을 내리 깔았다. 소매 너머로 말 대신 가는 소리가 비어져 나오고, 허릿짓 한 번에 눈가가 발갛게 물들었다. 살 부딪히는 질척한 소리가 방 안의 침묵을 대신하고는 버겁다는 듯 겨우 움직이던 하반신은 점차 그 속도가 빨라졌다. 지금 이렇게 틈 없이 몸을 조이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카이의 몸이라고 생각하면 이유 없는 전율이 쭉 뻗었다. 남자랑 자고 말았다는 생각이나 이런 건 곧 강간이나 다름 없다는 생각 같은 건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아까의 질문에 개운한 답이 나왔다. 쾌감으로 멍하게 안개가 끼인 머릿속에서도 확실한 한 마디. 카이가 급격한 절정을 맞는지 움직임을 뚝 멈추는 것이 보였다. 셔츠 자락에 살짝 가린 아래에서 탁한 액체가 주륵 흐르는 것 또한 보였다. 찌푸린 눈가에서 흐르는 액체는 낯이 설었다. 버겁도록 조이던 내부가 잘게 수축하고, 눈 앞이 일순 불을 껐다 켠 듯 했다. 모든 신경의 말단까지 확실하게 쩌릿한 감각이 내달렸다. 앗차 하는 순간이 지나 버리고, 몸 안에 뜨끈하게 퍼지는 액체를 느낀 듯 카이가 허리를 둥글게 말고는 몸을 떨었다. 방금 절정에 이른 것이 무색하게 다시금 반 쯤 일어서는 앞섶을 보자 조금 더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른 척 허리를 살짝 퉁겨 주는 것 만으로도 눈을 질끈 감고 얼굴을 가리는 사람. 손목을 매어 놓고는 자꾸만 그 쪽을 흘긋거리는 사람. 나만이 무른 것이 아니었다. 과연 너는 내가 생각하던 것 만큼 굳게 자랐던 걸까. 수많은 나날에 이름 붙이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돌아 선 것은 과연 나 혼자만이었을까. 눈물이 고인 채 찡그린 얼굴로 다시금 허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며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선 오히려 쉬운 답이 나왔다.
아마 나는 줄곧 너를 좋아해 오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런 시절부터 네가 하염없이 좋았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빛조각처럼 머릿속을 후비는 쾌감 사이에 단편적으로 맴돌고, 카이가 다시금 시선을 맞추었다. 관통하듯 머릿속 맨 안쪽까지 닿는 시선. 그리곤 처음으로 입을 열어 이름을 불렀다. 아랫배가 확 조여드는 느낌이 나고, 단순히 촉각적인 자극을 받았을 때와는 다른 감각이 뇌를 직접적으로 주무르는 양 했다. 익히 알아 오던 그 높낮이. 그 고저가 사람을 이렇게까지 오르내리도록 할 수 있었다. 새로운 발견이었고, 일종의 기적이었다. 묶인 팔이 저리고 아픈 것조차 기억나지 않도록 하는 말이었던가. 원래 내 이름이 그런 글자였던가.
“미와.”
인정해야만 했다. 머릿속을 일제히 휩싸는 쾌감도, 그 열락도 심지어는 일상 속 모른 척 넘기던 그 먹먹하던 이름 모를 씁쓰름함도, 결국에는 모두 너에게서 비롯된 것이 맞았다. 이제껏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살았더래도 지금 이것이 사실이었다. 카이 토시키가 억지로라도 가리켜 보이는 길. 겁이 나서 차마 인정할 수가 없던 일. 나는 네 안에 살았었고, 너는 그런 내가 당연했던 모양이다. 이제야, 이만큼 나이를 먹고서야 제대로 눈을 들어 마주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카이는 이름을 부르고는 열에 달뜬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대로 고개를 내렸다. 접합부에서 낯부끄러운 소리가 나며 미끈거렸고, 다시금 와 닿는 입술은 더웠고 또 달았다. 미와는 이번에도 깨물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얼떨떨해서나 놀라서가 아니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길 원해서 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