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이사 검색어 기념으로 씐나서 쓴 잣이사. 근데 써놓고 보니 이사쿠 열라 땅파네여 그냥 이사쿠가 짝사랑 격하게 하는 게 보고 싶었던 건가 나는....?........땅굴 일곱번 파는 이사쿠 주의 존나 제 취향 주의ㅠㅠ....쓰다보니 분량조절이 안돼서 아마 한 편 더 나올 듯. 으헿헤헤ㅔ헤헤 이런 잣이사 조으다 둘이 4겨라ㅏ !!
찻주전자로부터 녹아 나오는 향기, 끓은 물로부터 풍기는 뜨끈한 증기가 피곤을 녹진하게 녹인다.
이사쿠는 이 짧은 순간이 좋았다. 차는 마실 때에도, 또 끓일 때에도 사람을 진정시키는 마법이 우러나왔고 이사쿠는 그 일련의 과정을 전부 좋아했다. 이사쿠는 다도에도 꽤 능숙한 편이었다. 다만, 이 남자가
앞에 있을 적에는 얘기가 좀 달랐지만.
“차 드세요.”
천천히 차를 따라서, 손을 떨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찻잔을 건넨다.
이사쿠는 이 다음 순간이 특히나 좋았다.
살짝 휘어지는 눈꼬리. 복면 너머에서 울리는 낮고 건조한 목소리. 가볍게 스치는 손가락 끝. 이 모든 게 잔잔한 음률로 와 닿는다. 커다란 손이 쥔 찻잔은 제 것과 같은 데도 유달리 작아 보였다. 그 작은 차이점마저 심장을
달음박질 치게 했다.
“고맙군.”
두건 덕분에 벌겋게 달아오른 귓가가 들키지
않는 게 다행이다.
생소하고도 불편한 감정이 아닐 수 없다. 온종일 두근대고 기쁘다가도, 밤을
한숨으로 지새우기도 한다. 상대가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는 동시에 전혀 몰라 주기를 비는 피곤한 감정.
이 일련의 모든 감정이 이사쿠가 현재 겪는 증상이었다.
마디가 두터운 손가락이 복면을 살짝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또한 이사쿠가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이사쿠는 기껏 끓인 차가 식는 것도 모르고 손장난을 쳤다. 차마 하지 못 할 말들이 답답하게
맴돌았다. 그 찻잔, 일부러 제일 좋은 걸로 고른 거에요.
그 찻잎도 사실, 유명한 가게에서 사 온 거에요.
…잣토씨를 위해서,
그렇게 한 거에요. 차마 입술에 담지 못할 말들은 차게 식은 찻물과 함께 삼켜졌다.
향긋한 수국 차의 뒷맛이 떫게 느껴졌다.
이사쿠는 이제 자기가 못내 한심하게까지 느껴졌다. 보통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이건 너무했다 싶은 것이 스스로도 영 미련스러운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은 너무 어렸다. 나이가 열 다섯이면 약혼이나 결혼을 한대도 딱히 이상한 나이는 아니었지만
상대 나이가 꽤 찬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자신을 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애를 배려하는 태도가 은연에 확실히 배어있는 것이다. 자신이래도 이런 풋내
나는 사내애한테 연애감정이 들 리가 없다는 게 우습다면 우스운 부분이다. 스스로도 매일 밤 깨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나날이 깊이 익어갔다. 그와 함께 익는 거라곤 뒤뜰의 모과와 한 밤중의 한숨밖에는 없었다.
잣토는 근래 찾아오는 일이 잦았다. 오면 달리 하는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차를 마시고 얘기를 좀 하고 그러다가 도로 돌아간다. 이사쿠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잣토는 이 모든 행위를 매우 편안하게 느끼고 있었다. 보통 언제 차를 마시는가를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다. 사람들은 보통, 쉬려고 할 때 차를 마시기
마련이고 잣토도 거기에 예외는 없었다. 그 자리에서 혼자 안달이 나 감정을 정리하는 건 저 혼자라는 게 참
섧다. 잣토가 돌아가고 나서 남긴 미지근한 찻잔을 손 안에 쥐고 멍하니 창 밖을 보던 이사쿠는 이게 웬 청승인가
싶어 가벼운 한숨을 뱉었다. 밖에서 은근하게 풍기는 모과 향이 처량한 소쩍새 우는 소리와 함께 더없이 서러운
밤이다.
이사쿠가 얼마나 청승맞은 나날을 보내는가
하는 것과는 달리, 시험 결과는 재깍 시간에 맞춰 나왔다.
전에 비하면야 나은 점수에 안심한 이사쿠와 달리 보건위원회실 안은 유달리 우울했다. 평소에 공부라곤 신경 않던 일학년들도 시험 점수에 호되게 혼이 났는지, 고 작은 어깨들을 촉
늘어뜨리고는 말이 없다. 사콘은 실수로 몇 문젠가 틀렸다고 울상이고, 카즈마는 아예 고개를 들지를 않는다.
이사쿠는 그 시무룩한 모습들이 귀엽기도 하고
또 영 안쓰럽기도 해서, 오늘 맘 먹고 외출을 한 참이다.
마침 잣토씨에게 대접할 만한 차도 떨어졌겠다, 후배 애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거리를
사 들고 온 이사쿠는 부러 밝게 웃으며 차를 끓였다. 새무룩한 얼굴을 하던 아이들도 이사쿠 손에 들린 꾸러미를
보고는 눈을 반짝이며 곁에 모여 앉았다. 그 모습이 꼭 얼러 부르면 모여드는 강아지들 같아서,
이사쿠는 괜히 웃음이 났다. 말이 없던 꼬마들은 손에 쥐여 준 고운 색 찰떡에 신이
나서 떠들고, 상급생들은 단 향내가 나는 찻잔을 쥐고 금세 말이 많아졌다.
고새 자기들 몫을 다 먹고 눈만 말똥말똥
빛내는 꼬마들을 본 이사쿠는 결국 제 몫까지 양보했다.
선배, 선배 정말로 괜찮아요? 하고 묻는
해말간 눈동자에 이사쿠는 싱긋 웃었다.
한창 클 나인데 많이 먹어야지. 하고 머리를 쓱쓱 쓸어주자 금세 까르륵 웃으며 안겨 든다.
이사쿠는 마음 한 켠이 꽉 차오르는 이 감각이
참 좋았다. 이건 꼭 그런 거다. 싸움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케마가 위원회 꼬마들 앞에선 주먹도 못 쥐는 거나, 심술궂은 면이
있는 센조가 한없이 다정한 얼굴로 일학년 후배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다른 생각이 났다.
─그럼, 잣토씨도 나를 이런 느낌으로 보고
있었던 걸까.
순간 손 끝이 차갑게 식었다. 왜인지 잘 몰라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너무 서러웠다. 결국 그 날 이사쿠는 밤을 지샜다. 케마에겐
대충 둘러대고서 보건실에서 밤 내내 약을 끓였다. 아무도 마실 일 없는 수면제를 내도록 끓이던 이사쿠는 결국
한 숨도 못 자고 밤을 새웠다. 결국 나도 그 꼬마들과 같은 시선을 받고 있었다는 게 너무 슬프고 또 분해서
끝끝내 잠이 오지 않았다.
이사쿠는 그 일로 밤을 새고서도 온종일 그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수업은 어찌어찌 별 탈 없이
끝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위원회 모임도 없어서 보건실에 틀어 박혀 어제 일을 가만히 생각하는 것이다.
쓸데 없이 상상력이 풍부한 머리는 어느 새 생각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저 정도
나이에, 저 정도까지 오르신 분이 설마 아직까지도 정인 한 분 없으실까 하고 생각하면 위가 다 아팠다.
이사쿠는 이제 슬슬 이런 자신이 지겨웠다. 그 사람의 행복에도 마음이 쿡쿡 쑤시는
자신이 낯설고도 추악하게 느껴졌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연인에게 느끼는 감정이라니. 이사쿠는 어쩐지 성질이 확 치솟았다.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어차피 본인에겐 말 한마디 못할 거, 왜 나는 혼자 밤까지 새웠나 싶어 분기가 울컥울컥 올랐다.
이사쿠는 어제 끓여 둔 수면제를 벌컥 들이켰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쉬고 싶다. 밤새 마음 졸여가며 끓인 수면제는 특히나 독해서, 다음 순간 이사쿠는 상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잣토는 조금 신기한 기분으로 이사쿠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조용히 잠든 이사쿠는 잣토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색색 잘도 잤다. 평소처럼 차 한 잔 얻어 마실까 싶어 들른 보건실엔 이사쿠 혼자 등잔도
켜지 않은 채 잠들어 있었다. 잠깐 조나 싶어 살짝 들어가보니, 아예
엎드려 깊이 잠든 게 퍽 피곤했던 모양이다. 잣토는 이때다 싶어 가만히 이사쿠를 뜯어 보았다.
평소에는 아무래도 이 정도로 가까이에서 얼굴을 볼 일은 없는 것이다. 조금만 진지하게
바라볼라 치면 이사쿠는 부끄러운 모양으로 고개를 숙이거나 돌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게 참 귀엽지 않은가. 잣토는
피식 웃었다. 가볍고 보드라운 머리칼도, 애들답게 뽀야니 말간 피부도,
고생을 알면서도 순진하게 벌어진 입가도 어느 하나 귀여운 구석이 없질 않다. 심지어는
쑥스러워 숙이는 고개도 사랑스러웠다. 스스로도 참 신기한 것이, 가만히
이사쿠를 보다가도 더 자라면 참하니 곱겠구나 싶어 괜히 입 꼬리가 올라가곤 하는 것이다. 그냥 갈까 하던 잣토는
결국 몰래 품 안에 따 온 모과 두어개를 두고 돌아섰다. 올해 모과 향이 특히 좋으니, 꿈에 그 향이 배면 좋겠다 싶어서다. 머리카락을 살살 쓸고 돌아 나가는 발걸음이 영 아쉬웠다.
네 꿈에는 내가 나올까. 잣토는 결국 조용히 손을 거두고 돌아섰다.
맑고 향기로운 밤이다.
한참 달게 자던 이사쿠는 케마가 흔들어 깨우는
데에 깼다. 방에 와서 자라는 케마의 말에 기지개를
길게 펴던 이사쿠는 못 보던 모과가 책상에 올려진 걸 보고 물었다. 향이 유달리 곱고 열매가 잘은 것이,
학교 뒤뜰에 달린 게 아니다.
“토메, 이거 네가 가져다 놓은 거야?”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아.
이사쿠는 얼굴을 감싸고 소리 없이 높은 비명을
질렀다. 이런 데에 기대하게 되는 자신이 싫었다.
제발, 차라리 어떤 식으로든 이 감정이 말라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모과로
차를 끓여 내놓자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괴롭고 기뻤다. 고운만큼
아픈 감정은 아직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이사쿠는 결국 그 날도 잠을 못 이뤘다. 그 와중에도 바깥 날은 봄답게 푹해서, 모과 익는 향내만 진동을 했다. 이사쿠는 저 모과가 익어서 떨어지면, 이 감정도 같이 떨어져 썩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살면서 열 다섯번 째 맞는 봄은 처량맞게도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