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나몽이 도이 짝사랑하는 이야기.
손나몽 사복에 두건 안쓴 거 진짜 귀여운 거 같아여....손나몽은 타소가레도키 기요미 담당인 듯. 기욤기욤.
이 관계의 포인트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손나몽도 그걸 알고 있다는 게 좋아요....
+퇴고를 안했더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닼ㅋㅋㅋㅋㅋ수..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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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꾸는 꿈에는 그 남자가 나온다 .
여유로운 얼굴로 제 나름 최선을 다 해 던지는 수리검이며 표창을 전부 막아내곤 환하게 웃는 얼굴 . 그 얼굴로 장난치듯 , 출석부의 면으로 머리를 톡 치는 것을 끝으로 매일 밤 꾸는 악몽은 끝이 난다 . 매일 아침 , 그 미소만큼이나 환한 햇살이 얼굴에 드리울 즈음이면 손나몽은 헐떡이며 깼다 . 터져나갈 것처럼 쿵쿵대는 심장은 매일 아침 겪음에도 낯설었다 . 벌겋게 달아오르는 뺨 또한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 손나몽은 순수하게 궁금했다 . 이 꿈이 악몽인지 아닌지 하는 고민은 어느 새 앙금으로 남아 묵직하게 쌓였다 .
어금니 안쪽이 근질거리기 시작한 때와 꿈의 내용이 바뀐 것은 어렴풋이 비슷한 때였다 .
원래 맨 처음 도이에게 지고 나서는 , 진짜 ‘ 악몽 ’ 답게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초자연적인 무언가에 도전하는 꿈에 가까웠다 . 그리고 날이 지나고 , 손나몽이 도이에게 도전하는 횟수가 늘 수록 꿈은 천천히 바뀌어 갔다 .
살면서 이렇게 쓰고 창피한 패배를 맞은 적은 드물었다 . 그 때문에 금이 촘촘히 가 벌어진 자존심 사이를 꼭 맞도록 채운 것은 어린 애를 대하는 듯 한 상냥한 말들이었다 . 매번 날카로운 무기나 질색을 하는 어묵을 들고 덤비는 자신을 보고도 도이는 웃었다 . 그 웃음을 볼 적이면 손나몽은 얼굴이 붉어졌다 . 그것이 열등감에서 오는 것인지 , 이길 수 없음에서 오는 창피함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는 게 또 머리가 아팠다 .
한동안 손나몽은 도이를 찾지 않았다 .
실력을 키워 다음번엔 꼭 이기겠다는 핑계를 앞에 세우고 손나몽은 밤낮을 고민했다 . 이쯤 되니 살면서 진 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 이렇게까지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 ― 그러면서도 장에만 나서면 어묵 가게를 기웃대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 그것도 영문도 모르는 채로 .
고소한 어묵 튀기는 냄새가 뚝 멎자 , 호기심에 채근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손나몽은 그냥 고개만 설설 젓고 말았다 . 더 실력을 키우고서 도전한다는 변명은 어느 새 입 꼬리에 길게 달라붙어 있었다 .
손나몽은 근질거리는 잇몸을 슬쩍 건드려 보았다 . 그 안에 자리잡은 이가 보드라운 잇몸 사이로 빼꼼 나와 있었다 . 벌써 제가 이런 나이가 되었구나 싶어서 조금 으쓱해 진 것도 잠시 , 이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 문득 도이 생각이 났다 . 그 이라면 사랑니를 진즉에 뽑았겠지 하는 생각에 조금 분기가 일었다 . 그리고 궁금해졌다 . 도이 한스케도 이를 뽑는 게 싫었을까 .
두령님은 이를 뽑기 싫다는 제 투정조에 소리를 내서 웃었다 . 소두령님이나 코사카 형님도 잔잔한 미소를 띄우고 의원에게 말을 해 두겠다 하는 것을 보면 바닥으로 시선이 뚝 떨어졌다 .
코흘리개 적부터 보아 온 의원 할아범은 손나몽이 벌써 이리 컸어 , 하고는 껄껄 웃었다 . 부루퉁한 얼굴로 입을 벌리자 , 한참을 들여다 보던 의원 할아범은 더 나면 뽑자꾸나 , 하고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 나갔다 .
몸만 자란 어린 애 취급에 손나몽은 온종일 시무룩했다 . 닌자로서 한 사람 몫을 해 낸다는 자신감도 도이에게 패한 이후로는 뚝 떨어진 지 오래인데다가 한 평생 보아 온 성 내 사람들은 이미 저를 대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싫은 소리도 못 했다 . 여지껏 그 태도에 아무 느낌도 들지 않다가 갑자기 심통을 부리는 자신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되는 일이라곤 없지 않은가 . 손나몽은 퍼렇게 저무는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 밖에 사과꽃이 지기 시작한 것이 퍽 고왔지만 , 지금은 그 풍경마저도 청승맞기 짝이 없었다 .
혼자 청승을 떠는 것도 소두령님이 두령님 자실 죽에 넣을 잣을 좀 사오라 하는 소리에 뚝 끊겼다 . 손나몽은 시무룩 처진 어깨를 끌고 야시장으로 향했다 .
평소라면 꽤 즐거울 법한 법석이며 인파 속에서도 손나몽은 조용했다 . 특히 곧잘 어묵을 사던 가게 앞에서는 부러 걸음을 빨리 해서 지나갔는데 , 그 사실이 또 분통이 나는 것이 아닌가 . 손나몽은 손에 잣이 든 주머니를 꾹 쥐고 성큼성큼 걸었다 . 빨리 성에 돌아가서 , 일찍 잠자리에 들자는 생각만 났다 . 그렇게 훌훌 걷다 보니 금세 길이 나왔다 . 훌쩍 뛰려는 손나몽의 발목을 익숙한 목소리가 잡아 챘다 .
“ 손나몽 군 . 오랜만이네 .”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 도이 한스케였다 . 평소에 입던 선생 복장이 아니라 , 편한 사복에 두건도 쓰지 않은 모습이 낯설었다 . 정말 반갑다는 듯 생긋 웃는 얼굴 또한 낯설었다 . 꿈에서 보던 미소보다도 , 직접 웃는 도이는 청량했다 . 이것저것 말을 붙이는 도이의 등 뒤로 서늘한 봄바람이 불었다 . 그 머리채가 한들거리는 걸 보던 손나몽은 대충 대답을 하고는 등을 돌렸다 .
“ 손나몽 군 .”
눈 앞에 성큼 와 닿은 손가락은 의외로 마디가 져 있었다 . 머리카락에 닿는 손 끝은 체온이 꽤 높았고 , 손톱 끝이 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 손나몽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
“ 꽃잎이 붙었어 .”
도이는 머쓱하게 웃으며 손바닥 위에 손톱만한 사과꽃을 하나 올려 놓았다 .
손나몽은 천천히 가슴께부터 달아오르는 체온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도이가 손바닥에 올려놓은 꽃잎에서부터 열기가 새어 나와서 심장까지 뜨끈하게 달구는 것 같았다 . 탈 것 같이 뜨거워 진 손바닥을 꾹 쥔 손나몽은 고개를 꾸벅 숙이 고는 뒤돌아서 뛰었다 . 뒤에서 도이가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 손나몽은 일부러 듣지 않았다 .
머리가 아플 정도로 숨이 찼지만 , 손나몽은 속도를 늦추지도 , 뒤를 돌아보지도 못했다 . 화끈거리는 뺨과 간질거리는 잇몸이 무얼 말하려 했던가를 알아버린 탓이다 . 손에 꽉 쥔 꽃잎에서 얼얼한 향기가 새어 나왔다 . 눈 앞이 부연 것은 어디까지나 그 향기가 아프도록 얼얼하기 때문이라고 손나몽은 생각했다 .
우수수 내리는 꽃비를 맞으며 뛰던 손나몽은 진심으로 바랐다 .
전부 져 버려라 . 내 이를 뽑는 날까지 세상 사과꽃은 전부 져 버렸으면 좋겠다 .
차라리 생니를 열 번 뽑고 말겠다는 생각이 스스로도 어리게 느껴져서 , 손나몽은 성으로 가는 내내 찌푸린 미간을 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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