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와는 아침 식사를 하는 카이를 앞에 두고 일방적으로 말을 건넸다.
“알에서 깨어서부터 성룡이 되기 까지는 개체별 차가 심하게 나곤 해. 그 어떤 브리더도 알 상태에서 유추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말이지. 즉, 당신 알이 어떤 생장 속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카이는 묵묵히 들었다. 미와는 조금 더 착잡해졌다. 무릎 위에 얹은 어린 생명의 무게. 어쩌면 그 묵직함을 알지 못하게 함이 나을 수도 있었다. 만약에라도, 아주 만에 하나라도 그의 칼날이 혹은 장창이 느려진다면. 그 이유가 이 하루에서 우러 난 실수라면. 미와는 마음 속으로 몰래 인정했다. 자신은 이 뻣뻣한 용기사에게 단단히 반해 있었다. 그의 생환을, 그가 그토록 원하는 종전을 미와 또한 진심으로 원했다. 지금 상황에서 미와는 도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도울 것이었다. 힘 닿는 끝의 끝까지.
“하지만 당신은 출전을 해야 하지?”
카이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다시 수면 아래로 낮게 가라앉는다. 원하지 않아도 매 분, 매 초마다 깨닫게 된다. 자신이 있어야만 하는 곳은 이 곳이 아니었다. 피 비린내. 무엇인가가 썩는 퀴퀴한 냄새. 코가 아플 정도로 찡하게 울리는 마른 먼지 냄새. 그리고 그 소리들. 비명. 비명. 더 많은, 더 높은 비명소리.
미와는 팔에 끼고 있던 알들을 부화실에 따로 넣어 두고는 나갈 채비를 했다. 미와는 여전히 무릎에 알을 앉힌 채 멀뚱하게 이 쪽을 보는 카이에게는 짧은 미소를, 가는 자리마다 졸졸 쫓아 다니는 아가용들에게는 가벼운 쓰다듬을 남겼다.
“빌려 올게. 용. 필요하잖아?”
대신 돌아 올 때까지 이 집 좀 부탁해. 그 말만을 끝으로 미와는 정말 집을 나서 버렸다. 들판 쪽에서 푸드덕하는 큰 소리가 났다. 카이 또한 아는 소리였다. 용의 날갯짓 소리. 창 밖으로 초록빛 꼬리가 스치고 날아 갔다. 카이는 멀어지는 초록색 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주 멀어져 더 이상 창가에선 보이지 않을 무렵, 미와가 집을 부탁한다는 말이 퍼뜩 떠올랐다. 시선을 내리자 집을 비운 미와 대신 카이의 발치에 와글와글 모여 있는 아기 용들이 보였다. 카이와 시선이 맞자 기뻐서 조그마한 날개를 파닥이며 팔짝팔짝 뛰는 어린 용. 카이가 퍽 마음에 든 모양인지, 발목을 꼭 끌어안고 뺨을 부비는 작은 용. 하루 동안 이 집을, 이 용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머리가 아팠다. 반사적으로 찻잔에 든 액체를 들이킨 카이는 하마터면 찻잔을 내 던질 뻔 했다. 말도 안 되게 달았다. 카이의 표정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아기 용들이 일제히 카이의 다리로 몰려들어 꼭 껴안았다. 카이는 직감했다. 아주 긴 하루가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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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가 돌아온 것은 저녁 때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비가 간신히 그친 시각, 미와가 아까와는 다른 세찬 날갯짓 소리와 함께 들판에 내려 앉았다. 미와가 돌아옴을 직감적으로 눈치 챈 아가용들이 일제히 팔짝거리고 빠르게 돌아다니는 바람에 모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기진맥진해서 의자에 앉아 있던 카이는 칭얼대는 아기용들을 간신히 집 안으로 밀어 넣고 들판으로 달리듯 향했다. 미와가 비행용 고글을 벗는 것이 보였다. 그 등 뒤에 자리한 것은 그가 타고 갔던 용이 아니었다. 그르륵거리는 숨에서 작은 불씨가 튀었다. 진녹색의 독룡이 아닌 진한 자줏빛 비늘의 화염룡.
브리더의 룰이었다. 브리더들 사이에서 용을 한 마리 데려가려면 상응하는 다른 한 마리를 두고 가야만 했다. 굳이 미와가 설명 해 주지 않아도 카이로써는 쉽게 짐작이 갔다. 용은 귀한 생물이었다. 살아 있는 생물이니만큼, 빌리고 말고 할 수 있지도 않았다. 브리더들은 특수한 직종이니만큼 서로를 짜하게 알고 있었고, 서로 간의 암묵적 규칙에 철저하게 따랐다. 용보다도 적은 것이 브리더의 수였다. 돈만 준다고 아무에게나 용을 팔지도 않았고, 용의 번식이나 알에 관련된 일에는 만사를 제치고 서로를 도왔다. 그렇게나 용을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에게서 전투용으로 사용할 용을 빌려 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솔직히, 미안했다. 이제 와서 말로 하기에는 자신이 너무도 멀리 왔다. 카이는 스스로의 소문에 대해 잘 알았고, 미와가 파업을 선언한 것 또한 온전하게 카이 탓이었다. 이제 와서 사과를 하는 것 또한 상황에 맞지 않았다. 우롱하는 것 처럼 보이기에 딱 좋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는 카이를 모르는 양, 미와가 성큼성큼 걸어 다가왔다. 높은 고도를 비행하느라 장갑 너머로도 손이 차게 언 채였다. 벗어 든 고글 모서리에도 서리가 끼어 있었다. 비 오는 날은 높은 고도에서 비행을 해야만 했고, 그러자면은 자연스럽게 비를 맞아 체온이 떨어진 채로 더 높은 고공으로 올라가 다시 한 번 냉기를 맞닥뜨려야만 했다.
미와의 찬 손이 건네는 것은 다름아닌 작은 철제 피리였다. 카이 또한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화염룡의 브레스를 컨트롤 할 때 자주 쓰는 피리. 용마다 각기 다른 소리의 피리로 훈련을 해서 써야만 하는 피리 또한 각자 달랐다. 이만큼 훈련이 끝난 성룡이라면 즉 브리더가 어지간히 아껴서 품에 끼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미와가 아침에 타고 나섰던 독룡 또한 미와가 아끼는 개체였을 것이다.
마음 속이 싸했다. 제일 싫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아주 뻔뻔해지지도, 혹은 아주 악랄하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안하다, 고맙다 하는 말 하나도 제대로 목구멍에서 나오지가 않았다. 미와의 말이 맞았다. 실은 카이도 알고 있었다. 이건 카이의 문제였다. 당장 같은 기사단 내 용기사들만 보아도 그랬다. 물론 전쟁은 나빴다. 그렇지만, 카이 또한 나빴다. 카이는 침묵했다. 미와도 별반 말이 없었다. 희미한 웃음. 파랗게 질린 입술. 카이는 더더욱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가 등 뒤로 이미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들판 위, 카이는 멀거니 서 있었다. 미와는 등 뒤에 따라붙지 않는 카이의 발걸음 소리에 도로 걸음을 물려 카이가 있는 곳 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피리가 쥐여진 손을 꼭 잡고 집으로 이끌었다. 두 사람을 그렇게 각자의 탓을 하며 짧은 거리를 걸었고, 차갑게 언 손은 금세 뜨끈하게 녹아 땀이 찼다.
정작 현관 앞에 딱 섰을 때, 그 떄에 미와는 불이 환하게 켜지고 난로불이 켜진 집 안으로 카이를 차마 들일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카이를 뒤흔들어서도, 무너뜨려서도 안 되었다. 카이가 원하는 종전이 정말로 이루어질 때 까지는 안 됐다. 카이는 무자비하고 피를 갈구하는 제 1 용기사단 단장으로 남아야만 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러했다. 그렇지 않으면 카이가 죽었다. 미와는 그것만큼은 싫었다. 그래서 미와는 카이의 등을 다시 떠밀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부탁했다. 살아만 오면 되노라고. 알이 깰 쯤에 다시 오라고. 그 품 안에는 알 대신 다시 투구가 들렸다. 편한 옷 대신 경갑옷이 둘러졌다. 카이는 미와를 잠시 보고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와 같은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거센 바람을 뒤로 하고 멀리 멀리 사라지는 카이를 보면서 미와는 한참을 생각했다. 살아 오라고. 살아서만 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