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미와는 샐긋 웃으며 대답했다. 양 팔 안에 뿌듯하게 끌어 안고 있는 알들은 조류의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컸고, 또 묵직했다. 그가 두른 앞치마는 기이하게도 밝은 분홍색으로, 군데군데 그슬리거나 혹은 뭔지 모를 액체가 묻어 있었다. 이것이 현재 대륙 내 최고의 드래곤 브리더, 미와 타이시의 대답이었다. 그의 대답을 돌림노래 혹은 합창이라도 하듯, 발치에 옹기종기 모인 채 미와의 발걸음을 따라 뒤뚱거리고 쫓아 다니는 아기 드래곤들이 빽빽거리고 따라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새끼만 해도 약 대여섯마리. 뒷편에 자리한 벌판에는 이미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성체가 되기만을 기다리는 개체도 적어도 두세마리가 있을 것이었다. 전령은 조급증이 났다. 한 마리만. 한 마리만이면 된다고 빌고 달래고 얼르고 화를 내도 돌아오는 대답은 딱 하나였다.
“싫다구.”
된다, 안 된다가 아니었다. 좋고 싫음의 문제란다. 돈? 그도 아니면 부족한 물자라도? 그 어떠한 조건을 걸어도 미와는 부동이었다. 돈도 많고 물자도 넉넉하단다. 말 그대로 싫다고 고개만 외로 젓는 데에는 사람이 미쳐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현재는 전시였다. 비록 왕국의 승리가 코 앞까지 닥친 종전기에다가, 왕의 군대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용이 필요하지 않은 전투는 없었다. 특히나 제 1 용기사단의 기사단장이 용 없이 전장에 나선다는 건 어불성설에 가까웠다. 파괴자 없는 전장의 사기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처참했다. 얄밉게 고개만 살래살래 젓던 미와가 처음으로 싫다는 말 외의 다른 말을 했다. 물론 더 희망차거나 유리한 말은 아니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전령은 하마터면 울음이 왈칵 터져나올 뻔
했다.
“카이? 왜 그, 제 1 용기사단 단장. 용이 그렇게 필요하면 직접 오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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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는 현존하는 드래곤 브리더 중 단연 최고였다. 세심하다 못해 완벽한 케어와 까다로운 브리딩으로 인해 부화율이 다른 브리더의 두 배를 웃돌았고, 알을 깨고 나서도 조건 좋은 성체로 무사히 성장하는 데에 걸리는 기간도 단연 짧았다. 용의 훈련도 야무졌다. 굳이 군용 훈련소에서 크게 손을 타지 않아도 좋은 환경에서 잘 자란 용들은 전장의 에이스 그 자체였다. 브리더와의 관계가 돈독한 용들은 용기사를 태우고도 불안해하지 않았고, 비상시에도 용기사를 보호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군용의 주문은 거의가 미와에게로 쏠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일어났다.
용이 있는 부대는 정식으로 훈련기간을 거친 용기사단 뿐이었다. 총 열 세개의 기사단으로 이루어진 용기사단은 단연 왕국 군대의 꽃이었다. 기본 기마병과 궁수들, 그리고 중장비 포병의 수는 다른 부대보다 적었지만 용기사의 수가 부대당 기본 다섯이었다. 그 구심점을 이루며 최악의 전선에서 매번 승리를 찬탈하는 제 1 용기사단은 용기사는 셋 뿐이었지만 방어를 위한 기마병에 더 초점을 맞춘 부대였다. 그렇다고 해서 파괴력이 부족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용기사 중 한 명이 파괴와 학살에 특히나 재능을 보이며 젊은 나이에 갑옷을 피로 적시고 전장을 부수기로 유명한 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용기사가 전장과 적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그는 용의 목숨을 철저하게 도구로써 다루었다.
용이란 그 무게가 집채보다도 더하고 비늘 단면부터가 날카로운 존재이다. 그렇지만 배는 비늘에 덮이지 않았고, 용기사의 리드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했다. 그 용기사는 용의 뱃가죽에 장창이 찔리던 말던 상관 없는 전술을 끈질기게 펼쳐서 적진의 정 중앙에 다다를때까지 혹사하다가, 용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될 즈음이 되면 적에게 둘러쌓인 네 면 중 두 면을 브레스로 태워 버리고, 기진맥진한 용의 목숨을 자기가 마저 끊어서 그 육중한 시체를 적진 쪽으로 쓰러뜨려 깔아 뭉갬으로써 완전한 학살을 추구한다고 했다.
제 1 용기사단에서는 이주일에 한 번은 용이 죽어 나갔다. 전부 전사였다. 부대 내 용기사 전부가 그런 전술을 택했다면 부대 내 생존전략이라고라도 지껄일 수 있었겠지만, 그런 피냄새 풍기는 전략을 고집하는 것은 단 한명이었다. 보통 용기사와 용간의 파트너쉽이 구축되면 기본적으로 5년, 길면 용이나 용기사가 명을 다 할때까지 이어지는 것에 비하면 파격적으로 짧은 기간이었다.
용은 까다로운 생물이었다. 알을 부화시키는 것도 머리가 아프도록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알에서 깨고 난 이후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것만이면 모르겠지만, 용은 영물이기도 했다. 사람과의 교감이 완전했다. 키우는 데에 애정을 쏟고 정성을 들일수록 튼튼하고 안정적인 성룡으로 자랐다. 어떤 타입의 개체인지 어릴 적부터 파악해서 맞춤형 양육이 필요했다. 군용이 된다고 해도, 보통 2년 정도는 전장에서 경험을 쌓아야 학습 이후에 완전한 전장의 신이 되는 것이다. 그런 용들이 2주 꼴로 픽픽 죽어 나자빠지고 있었다. 군용 보급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한 미와에게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가 죽이는 용들 중 구 할은 미와의 손을 거친 용들이었다. 발달이 늦어 근 2년을 애지중지 키운 용도, 알 시절부터 무시무시한 성장률을 보이던 건강한 용도 그 부대로만 가면 그냥 죽은 날을 받아놓은 소모성 목숨이었다. 그렇다. 지금은 전시다. 그렇지만 미와는 잘 알았다.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음을. 당장 다른 용기사들이나 용기사단만 보아도 답이 자명했다. 이건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 빌어먹을 제 1 기사단장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미와는 파업을 했다. 한 달에 두세번 꼴로 빗발치는 제 1용기사단으로부터의 재배급 요청을 전부 무시하고 양육에 전념했다. 용기사의 취향 또한 어찌나 확고한지, 파이어 계열의 드래곤이 아니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미와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다. 용을 키우는 일은 장난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곱게 사랑을 부어서 키운 개체를 군용으로 보내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그나마 전시라서 끄덕인다고 해도 이건 해도해도 너무했다. 더 이상의 용납은 없었고, 파업은 그 용기사가 자체적으로 깨달음을 얻거나 혹은 미와를 찾아 와서 싹싹 빌 경우에나 재고될만한 사항이었다. 이 쪽은 철저한 갑이었다. 그 빌어먹을 고급 취향을 맞출 수 있는 브리더는 대륙 내 미와 혼자였고, 그 미친 로테이션률을 맞출 수 있는 것 또한 미와 혼자였다. 미와는 느긋하게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전령이 다녀간 지만 약 다섯 번.
파업을 시작한 지는 딱 한달 하고도 이틀. 미와는 더 느긋하기로 했다. 마음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