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엿뉘엿 해가
지는 로맨틱한 배경에 쌍쌍이 하교하는 학생들의 수가 평소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있다. 저 안에 아는 얼굴만 몇 개던가. 얼추 세어 봐도 네 개는 넘는다 넘어. 조오기 팔짱 끼고 손 잡고 더블 데이트라도 가는지 케마랑
사쿠쨩이랑, 코헤이타랑 타키가 쌍쌍이 들러붙는 걸 넘어 넷이서 싱글벙글 교문을 지나는 광경이며,
그런데 관심 없다며 시침 뚝 떼던 몬지로도 한쪽 손에는 두 살 어린 고운 후배 손을 잡고 얼굴이 시뻘개지는 모습하며.
세상은 참으로 부조리하고도 불공평했다.
이사쿠는 멍하니
턱을 괴고 생각했다.
‘너네 쟤네 별명이 뭐였는지 아니. 저기 가는 쟤는 별명이 개고, 쟤는 짐승, 쟤는 케마랑 셋트로 견원이었는데….물론 진짜
성격도 별명 그대로 빼다 박았고 말이지… 아니 근데 왜 죄다 후배야. 저 나이부터 어린 애들 밝히는 꼬라지들 하고는. 나는 꿋꿋이 올바른 학생의 정도를 걷겠어.
아…나도 집에 가고 싶다. 오늘 저녁 반찬은
뭐 하지..’
그렇다, 이사쿠는 쌍쌍으로 하교를 못 하는 것뿐 아니라
하교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뭐 딱히 어마어마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이번 주 주번이라 그렇다. 반에 애들 싹 빠져나가고 홀로 덩그러니 남아 선생님 체크를
기다리는 제 모습이 스스로도 쬐끔 처량맞아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원래라면 토메가 옆에 붙어 앉아 기다려 주면서 이것저것 잡담도 해 주고 그러니까 전혀 외롭지 않았지만,
며칠 전에 사쿠베한테서 고백 받았다면서 얼굴 벌개져서 오고 난 이후로는 그런 것도 전혀 없거니와 매일 같이 가던 등하굣길도
이제는 얄짤없이 혼자다.
딱히 사쿠베한테 질투를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여자친구 생겼다고 소꿉친구를 팽하니 버리는 토메가 좀 많이 원망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작년
발렌타인 때 선심 쓰듯 만들어 준 우정 초콜릿에 감격하며 기뻐하던 순수한 토메는 어디로 가고, 세 살이나
어린 후배 손을 잡고 허허 웃으며 데이트 가는 토메만 남았다. 이것 참 얄궂네. 이사쿠는 한층 더 멍한 얼굴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최근 이주일 내에 주위 친구들이란 것들은
죄다 표정 풀려서 연애하기 바빴다. 오죽하면 점심을 혼자 먹은 날도 있으니, 말 다 했다 보면 된다. 곱씹어 생각하고 있노라니 점점 저 친구들의 탈을 쓴 사내놈들에게 역정이
일기 시작했다. 내가 연애 상대로 안 보이는 건 그렇다 치고 친구 하나 챙기는 게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인가!
혼자 씩씩대던 이사쿠는 제풀에 지쳐 책상 위에 엎드렸다.
어쩌면 그냥
나랑 별로 안 친했다거나. 아니면 내 존재감이 원래 이 정도일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문 우울한 생각들은 가지 치고 뻗어나가 열매 맺기 직전으로 자라났다.
그래. 내가 딱히 예쁜 편은 아니지.
타키처럼 몸매가 날씬한 것도 아니고 사쿠베처럼 귀여운 것도 아니고 미키처럼 눈에 띄는 미인도 아니고.
만날 저들끼리
쌈박질 하는 거 말려놓고 상처 여며놓으면 뭐 해.
부모님 바빠서 도시락 못 싼다고 울상 짓는 거 고기반찬 해서 도시락 싸다 주면 뭐 해. 아침에 알람 못 듣고 늦잠 자는 거 깨워다가 등교 시간 맞춰 시키면 뭐 해. 감기 걸려서 학교도
못 오고 끙끙 앓는 거 죽이며 약이며 바리바리 싸 가다 먹이고 재우면 뭐 해. 엄마 생신 선물 뭐 할지 모르겠다는
거 백화점 데리고 가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빙빙 돌고서 꽃까지 골라다가
추천해 주면 뭐 하냐는 말이야. 결국엔 다들 나는 죽었나 살았나 신경도 안 쓰고 지 여친 손 꼬옥 잡고 실실
웃으며 놀러 다닐 거. 참 헛 짓 했다 싶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눈물도 셋트 메뉴처럼 같이 핑 돌았다. 어쩜 한 놈도 안 남기고 저런담.
미묘한 배신감이
들면서 괜히 서러워진다. 아니 근데 담당 선생님은 왜 안 오시지! 오늘 저녁 반찬으로 고기 완자 하려면 세일하는 다진
돼지고기 물량이 떨어지기 전에 마트를 가야 하는데!!
기승전돼지고기의
생각을 마치며 천천히 고개를 든 이사쿠는 눈 앞에 드리운 그림자에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헉. 나 혼자 있는 줄 알았는데. 다 집에 간 거 아니었나?
정신을 가다듬고
딸꾹질을 참으며 올려다보자 서늘하고 매끈한 얼굴이 하나.
“세, 센조… 집에 안 갔어?”
고개를 살짝
끄덕인 센조는 옆 자리 의자를 끌어다가 옆에 앉았다.
당연히 센조도
어느 예쁜 후배랑 알콩달콩 연애질 하느라 일찍 하교하겠거니 했는데. 말로 하기 뭐한 감동이 울컥 올라왔다. 센조…
너 진짜 좋은 놈이구나. 구질구질하게 또 눈물이 나올 뻔 해서 억지로 기침을 해서
숨긴 이사쿠는 물었다.
“왜 아직 안 갔어?”
센조가 피식
웃었다. 차갑게 정돈된
얼굴이 살짝 부드러워 지는 모습이 예쁘다. 이 얼굴을 후배들이 내버려 뒀단 말인가 싶어 좀 의아해졌지만,
직후에 나온 대답이 너무 감동적이라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너 오늘 주번이잖아. 케마도 없는데 누가 기다려 줘야지.”
아, 이 얼마나 상냥한 대답인가!
이사쿠는 그나마 이런 사려 깊은 친구가 남아있음에 깊이 감사했다. 언젠가 몬지로가
센조새끼는 마왕이다 하는 거에 맘 속으로 몰래 조금 동조했던 것도 다 취소다. 마왕이라니, 저런 착한 친구를 두고 그런 생각을 잠시나마 한 자신이 너무도 창피했다.
“미안. 일부러 안 그래도 되는데.”
“친하잖아. 괜찮아.”
다시금 밀려오는
감동의 물결이 이사쿠를 덮쳤다. 그래 우리 친하지! 다른 놈들은 이미 안중에도 없다. 너희는 여친들 손이나 잡고 다녀라. 난 센조랑 놀 거다! 왜냐면 나랑 센조는 친하거든!
가슴 속에
프랑스 혁명 풍의 승전보가 울렸다. 그래, 아직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친구가 있구나 싶어 코 끝이 다 찡해지는데 그 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담당 선생님이 앞문을 미적미적 열고 들어오시더니 문 잠그고 가라~ 하는 맥 빠진 소리를 남긴 채
도로 나가셨다.
“곧바로 집에 가?”
가방을 고쳐
매던 센조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돼지고기 같은
얘기를 센조한테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이사쿠는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요 앞 마트에서 다진 돼지고기 세일해서 그거 사러 가야 돼.”
센조는 조금
웃었다.
역시 좀 이런
살림 같은 이야기를 센조한테 하는 건 아직 좀 창피하지만, 이사쿠는 괜찮다고 계속 되뇌었다. 괜찮아! 우리 이제 친하거든!
한창 주문처럼
머릿속으로 그 한마디를 외우며 아직까지도 감동에 젖어 있는데, 눈 앞에 불쑥 손이 다가왔다. 이사쿠는 하얗고
가늘고 긴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봤다.
“같이 가 줄게. 나도 집에 녹차 없거든.”
어서 잡으라는
듯, 흰 손가락이 팔랑팔랑
재촉하며 흔들렸다.
이사쿠는 뭐에
홀린 듯 그 손을 잡았다. 센조의 손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거칠었다. 센조가 어서 일어나라는 듯 손을 끌었다.
“세일하는 거면 물량이나 시간 같은 거 한정 있는 거 아니야?”
“헉, 맞아! 500팩 한정이야!”
달콤한 감정이
채 치고 올라오기도 전에 저녁 반찬이 머릿속을 점령한다.
교실 문을
잠그는 와중에도 센조는 손을 놓지 않았다.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자, 센조는 웃음기 있는 얼굴로 나직하게 말했다.
“이러면 남 부럽지 않잖아.”
이사쿠는 어쩐지
머릿속에 남아있던 우울함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워짐과 동시에 센조도 나 같은 마음이었나 싶어 조금 뭉클해졌다. 그래, 센조도 분명 저 놈팽이 세 놈을 보며 느낀 게 많겠지. 올바른 우리 둘끼리 친하게 지내자꾸나.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사쿠를 보던 센조는 소리 내서 웃었다. 아직 겨울이라는
걸 증명하듯 창 밖이 금세 어둑어둑해졌다.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얼어붙게 추운 밖이 조금 더
견딜 만 했다. 찬바람 부는 운동장에서, 센조는 맞잡은 손을 제 코트
주머니에 넣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
반찬 남으면, 나 내일
도시락에 넣어 줘.
이사쿠는 소리
내서 작게 웃었다.
작년에 사
둔 초콜릿 중탕기는 올해도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이 글에 대한 저의 생각은.....센조는 조교의 달인이다...싶은....그런...이하생략한..
이사쿠 여체화는 솔직하면서도 유하고 귀엽다고 생각해요. 6학년 중 여체화가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이사쿠랑 센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4학년은 전체적으로 잘 어울리는 듯...특히 타키랑 미키!! 짱 귀여운듯!!!바나나킁은 여체화도 안여체화도 현대화가 좋고..
그리고 고기완자는 오늘 제가 만들 저녁반찬입니다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