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위 곰팡내와 먼지가 풍기는 좁다란 통로 안, 몸을 한껏 웅크리고 조심조심 기어 나가고 있자면 등줄기가 괜히 짜릿하게 떨리곤 했다. 어디 깊은 동굴 안을 디디며 나아가는 탐혐가라도 된 양 숨까지 두어 번 참아 가면서 느리게 기어 나아가는 것이다. 널빤지 한 장 아래에 자리할 누군가의 방에서 소리며 불빛이 채 숨어지지 못하고 새어 나오는 것 또한 짜릿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런 소리를 들으며, 남의 촛불 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천장 위에 기계 장치를 짜 맞춰 넣고 있자면 얼얼하게 쓸린 무릎도 폐 속까지 매캐한 먼지 냄새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밤의 작업은 그렇다.
그 날도 그런 식으로 밤 시간을 두어 식경 보낼 요량이었다. 허리춤에 찬 연장이 덜걱거리고, 등에 둘러 멘 나무조각이며 밧줄 따위가 뻐근하게 어깨를 누른다. 자기 방에서부터 천장 안 쪽으로 깊숙이 타고 올라가 먼지를 고스란히 들이마시며 무릎걸음을 긴다. 저번엔 어디까지 했더라.
사실 알면서도 괜히 기억을 더듬는 척을 한다. 가장 늦은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해 나가는 것이 밤 작업의 어쩔 수 없는 점이라고, 아무에게도 할 일 없는 변명을 하곤 어두운 천장 위를 걷다가 허리를 숙였다. 여기서부턴 높이가 조금 더 낮아진다. 들보가 있어서 밧줄을 매기엔 좋지만 나중에 목이며 어깨가 시큰거리고 아픈 것 또한 사실이다. 1학년일 적, 아니 당장 작년인 2학년일 적만 해도 별 무리 없이 지나다니던 곳인데. 키가 자라고 있기는 한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무릎걸음을 기다가 뚝 멎어 섰다.
늦은 밤인데도 여적 환한 촛불 빛이 틈마다 새어 나오는 방.
반 길 아래에 머리를 싸매고 앉았을 모습이 눈 앞에 훤하다. 나무 판자가 말라 비틀어지느라 손가락 두 마디 만하게 벌어져 남은 틈. 그 아래로 살짝 눈을 대었다. 아니나 다를까, 환한 촛불 앞에 턱을 괴고 앉은 모습이 맨 먼저 보였다. 책상 앞에 저렇게 오래 앉았는 게 지겹지도 물리지도 않는 모양인지 이런 시각까지도 조는 일 한 번 없이 붓을 든 채인 곧은 등. 동실을 쓸 터인 사키치는 방을 비운 것 같았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곧 회계 위원회의 감사 철이 돌아온다. 거기에 이반 특유의 숙제 양까지 합치자면 몸이 두세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한참 위에서 보이는 정수리 끄트머리, 동그랗게 말리는 가마 모양을 잠깐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괜히 머쓱해져 이미 작업이 끝난 기계 장치 위를 쓱 쓸어 보았다. 손가락 끝에 뻑뻑하게 감기는 먼지. 무릎을 조금 옮기자 덜컥 하는 소리가 나더니 아래쪽 방으로 통하는 나무 판자가 밀렸다. 원래 각 방마다 천장으로 곧장 향하는 판자 문이 있기는 마련이지만 이제껏 밤 작업을 하다가 이걸 열게 된 일은 전혀 없었다. 누군가를 깨우거나 눈치 채이는 일 없이 살그머니 작업을 끝내는 게 이 밤 유희의 가장 중심이었던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도로 판자를 밀어 닫는다는 게 그만 주변에 놓아 둔 연장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아차 하는 사이에 벌어진 틈 사이로 작은 망치 하나가 뚝 떨어지고야 만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리고, 희미하게 비명을 삼키는 소리가 뒤를 따랐다. 어쩐지 등줄기 맨 끝이 오싹하게 달았다. 다쳤으면 어쩌지. 판자를 마저 밀어 열곤 망설임 없이 훌쩍 뛰어 내렸다. 맨 먼저 보인 것은 찌푸린 채 손가락을 움켜 쥔 모습이었다. 새하얀 침의 모습은 노란 촛불 빛 앞에서도 눈 맨 안 쪽이 욱신거리도록 희었다. 사사야마. 억누르듯, 짜증을 참듯 잇새로 내뱉어져 나오는 이름은 괜히 심술이 나도록 쌀쌀맞았다. 물론 자기가 잘못한 일은 맞지만 그래도, 그래도 하는 마음은 좀체 가만 앉아 있을 줄을 모른다. 늘 그렇다.
“……미안.”
겨우겨우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말은 볼품이 없다. 슬쩍 내린 시선 아래에 엉망으로 깨어진 경대가 보였다. 책상 곁에 놓아 둔 것인 듯 했다. 책상 바로 옆까지 파편이 튄 것이 똑똑히 보였다. 끄트머리를 꼭 누른 채 쥐고 있는 손가락은 분명 거기 베였을 터였다. 자기도 모르게 손이 뻗어 나갔다. 손톱 끝이 채 닿기도 전에 반 보 물러서고야 마는 어깨는 살짝 움츠린 채였다. 편하게 내려 묶은 머리카락이 느리게 같이 반 보 물러난다. 어쩐지 마른 침이 넘어갔다. 그런 광경이었다.
“..나가.”
짜증스러운 듯 고개를 옆으로 젖히는 모습. 별반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길게 드러나는 목덜미를 따라 시선이 옮아 간다. 그래서 들은 말을 이해하는 데엔 조금 더 걸렸다. 아. 나가라고 말했나.
“내가 치울게.”
“…나가라니까.”
당장 어깨를 떠밀기라도 할 것 같이 눈을 똑바로 치켜 떴다가 다시 시선을 피한다. 눈을 맞는 것 조차 화가 치미는 건지, 그도 아니면……
성큼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다시 한 번 뒤로 물러서기 전에 손목을 잡아 챘다. 팔꿈치 아래로 쉽게도 흘러 떨어지는 침의 소매는 사람 머릿속을 찡하게 울리는 구석이 있다. 다행히 베인 곳은 깊지 않은지 피가 대충 번져 묻은 채였다. 자기 옷 소매를 끌어 닦으려다가 말았다. 허옇게 먼지가 묻은 모양새가 영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대신 곧바로 입술을 가져갔다. 혀 위로 번져 나가는 찝찔한 쇠 맛은 마냥 달기만 하다. 찰나가 지나기도 전에 곧바로 어깨가 떠밀리고, 입술 안에 확실하던 체온이 멀어진다. 촛불 아래에서도 보이도록 미끈하게 젖은 검지 손가락에 심장 한 구석이 덜컹 기울었다. 등을 거세게 밀려 장지문 밖으로 쫓겨나고서야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혼자 다 치우려면 힘들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괜히 기웃거리고 앞을 맴도는데 드륵 하고 장지문이 거칠게 열렸다. 빼꼼하고 틈 사이로 비치는 얼굴은 여전히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였다. 오래 얼굴 보여주는 일도 없이 귓가에 따끔한 한 마디만 남았다. 가라고 멍청아.
'사사야먀 멍청이' 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촛불 빛이 사라질 때까지 괜히 서성거리고 서서 방 앞을 맴돌기만 하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동이 곧 틀 것이다. 지금부터 담을 넘어서, 그래서 방물 가게까지 가면, 그러면 겨우 시간에 맞게 돌아올 수 있을 것이었다.
원래 있던 것처럼 제대로 된 경대는 살 수 없겠지마는, 그래도 개중 가장 곱단 것으로 골라 올 것이다. 얼굴 찡그리지도 못하게 몰래 방 안에 놓아두고 가야지. 첫 수업을 무단결석 한 걸 알면 또 사사야마 멍청이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뭐 어쩔 텐가.
멍청이 하지 뭐, 까짓 거. 주변을 휘 둘러 보다가 훌쩍 담을 넘었다. 빠르게 달리는 등 뒤로 차갑게 스치는 새벽 공기가 상쾌했다.